2015년 12월 9일
바라데로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이제 쿠바 여행도 막바지다. 여전히 바라데로의 아침은 꿉꿉한지 피곤하다. 11시 버스는 타야겠다는 생각에 10시쯤 터미널에 갔더니 헐퀴! 11시 버스가 매진이다! 다음 버스는 2시! 아놔-_-; 어쩌지? 일단 2시 버스를 예약하고 나오는데 합승택시 중계인이 우리앞을 가로 막았다. “콜렉티보 택시! 테이큐 도어 투 도어” 이젠 대사같다. 어짜피 비아술 타면 아바나 터미널에서 다시 시오마라네까지 택시 타야되니까 흥정을 좀 해보자! “그래 얼마야?” “인당 15쿡” “에? 비싼데? 뭐야 버스보다 비싸잖아. 인당 10쿡! 어때?” 얘들도 별수없다. 합승 택시에 추가로 사람이 타면 바로 주머니에 들어가는 보너슨데 나의 제안을 안 받을수 없지! 아하하하! 그런데 택시는 지금이 아니라 오후 2시에 떠난단다. 잘됐다. 남은 시간 바라데로 바다나 한번 더 보고 가자!
펑크
어쩜 어제까지 그렇게 날씨가 꾸릿꾸릿 하더만 오늘 떠나려니까 왜 이렇게 날씨가 좋은지 바다와 하늘이 맞닫는 수평선이 위아래 색의 조화가 너무 좋다. 떠나려니까 조금 아쉽긴한데 이젠 헤어져야 할시간! 다음엔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 한 10년뒤? 택시는 약속한 시간보다 5분 일찍왔다. 우리를 먼저 태운 택시는 에콰도르 키토에서 휴가온 커플을 픽업한 뒤 아바나로 떠났다. 바라데로에서 아바나까진 생각보다 더 먼 느낌이다. 뒤좌석에서 한참 졸다 일어났는데 이제야 중간쯤 온듯 싶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서 그런지 창밖 풍경은 좋다. 경치를 좀 구경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차를 옆으로 세운다. 왜그러지? 헐~ 펑크가 났단다. 오잉~!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펑크가 났꾸낭. 15분이면 된다며 아무일 아닌듯이 내려서는 트렁크에 스페이어 타이어를 꺼내 쑥쑥 싹싹~ 진짜 딱 15분 걸렸다. 역시 쿠바에서 벌어질 일은 우리도 예외가 없구나!
살사 교습소
드디어 시오마라에 도착했다. 몇일 만이냐? 집나갔다 돌아온 느낌인데 정말 내집같다. 이제 집안 구석구석이 익숙해서 편하다. 거지같았던 아바나도 그사이 많이 정비 됐는지 까삐똘리오 주변도 깨끗해졌다. 진짜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아바나의 모습에 앞으로의 10년이 진짜 궁금하다! 5년전 로마에서 가이드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로마 유적지는 아직도 발굴중이라 10년뒤에 다시 오면 또 달라져 있을꺼라고,.. 그때는 그 말에 그래? 시쿤둥했는데 아바나의 10년뒤 모습은 정말 궁금하다! 짐을 풀고 와이프는 빨간책에서 읽었던 지침대로 시오마라 할머니에게 저녁에 살사를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저녁은 갈리 랍스타다! 역시 쿠바에선 랍스타야! 좋아좋아!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돌아왔더니 시오마라 할머니와 같이 보조해주시는 아주머니가 음악을 셋팅하고 계셨다. 아! 정말 가르쳐주시는구나! 오늘 이곳에 묵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을 불러모았다. 오늘 새로온 현영씨랑 선희누님 그리고 욱과 다이스께상 그리고 이름 모를 일본인 한명. 대충 거실에 9명정도가 모였다. 우리는 이미 비냘네스에서 기본 스탭을 배웠기때문에 삼박자 살사 스탭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역시 초보는 초보! 스텝 밟느라 정신 없는데 시오할머니는 자꾸 손가락으로 귀를 가르키시며 음악을 느껴보란다. 에헤라 디야~ 모르겠다. ㅋㅋㅋ 한참을 추고 나서 잠시 쉬는시간. 숨을 돌리고 있는데 시오할머니가 노트북을 가져오시더니 예전에 여행객들과 같이 췄던 동영상을 보여주신다. 그 영상에 한 일본인듯 보이는 남자도 여기서 매일같이 춤을 배웠는데 진짜 완전 대박! 음악을 탄다는게 저런거구나! 물 흐르듯 끈임없이 둘이서 어떻게 저렇게 추지? 와~~ 넋놓고 보다가 또 다시 2차전이 시작됐다. 더이상 설명은 생략한다. 우리는 그렇게 밤새 춤을 췄다.
2015년 12월 10일
어제 춤을 춘 탓인지 같이 묵는 여행객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오늘은 다이스케 상이 추천해준 2쿡짜리 일본 음식점에 갔다. 까삐똘리오에서 말레꼰 방향으로 오이스포 거리를 쭉 걷다보면 작은 공원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에서 왼쪽으로 두블럭 정도 가면 나오는 조그만 일본 음식점이다. 아바나에 이런 곳도 있꾸나! 아바나에 거의 일주일 넘게 있었는데 왜 우린 이곳을 몰랐을까? 하기사 그렇게 찾아 헤맸던 차이나 타운 입구도 찾으려고 할때 못찼더니만 어제 택시타고 오다가 처음 봤다. ㅎㅎ 그곳도 우리집에서 바로 2블럭만 가면 되는데 왜 거길 지나갈 생각을 못햇을까? ㅎㅎ 여튼 내심 기대하고 갔던 가츠동은 역시 쿠바맛이다. 하지만 배는 부르다. 그래 2쿡에 맛까지 바라는건 오바지. 배를 채우고 또다시 하바나 시내를 걸어본다.
쿠바의 현실
두번째라 그런지 확실히 처음 느낌과는 다르다. 뭔가 볼때마다 새롭고 왜 똑같은 길을 걸었는데 보이는게 다른지. 여튼 길을 걷다가 내눈을 사로잡는 그림을 한점 발견했다. 비가 온 하바나 거리를 그린 그림인데, 올드카와 좁은 골목길이 왠지 끌린다. 길가에 전시된 그림을 좀더 가까이가서 구경 하려니까 건물 안쪽에서 누가 손짓을 한다. 안으로 들어와서 보라는 것 같다. 왠지 또 낚일것만 같은 느낌에 순간 망설였다. “들어가볼까?” 그래 가보자!
우리를 안으로 안내한 사람은 자기를 A라고 소개했다. 참고로 실명을 공개하면 왠지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갈것 같아 A로 지칭한다. 여기에 걸린 모든 그림을 자기가 그렸단다. 안그래도 쿠바에 기념품을 뭘 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적당한 가격의 그림을 만나면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림을 한참 보고 가격을 물어봤다. “이건 40쿡이고 이건 얼마고 저건 20쿡!” 응? 20쿡? 20쿡이면 우리 주머니 사정권에 들어온다. 와이프는 저 작은 체게바라 그림이 맘에 들었는지 저 20쿡짜리 그림을 사잔다. 좋아! 사자! 그림을 사기로 결정하고 그림 포장을 위해 잠깐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얘기치 않게 작가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바나 처음와서 만난 호르켕 안디와 미겔에 대한 이야기로 질문이 시작됐다. 사실 이 친구들한테 당한것도 당한거지만 얘들이 이야기한게 맞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정말 대학은 공짜냐? 이 질문을 시작으로 프랭크와 긴 이야기가 시작됐다. 대략 한시간 정도인듯 싶다.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그동안 의아했던 궁금증들이 실타래 풀리듯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궁금증은 이거였다. 왜 이곳은 이렇게 더럽나? 사회주의 국가고 정부통제가 강한 나라라면 조금만 더 신경쓰면 훨씬 더 좋게 바꿀수 있지 않나? 진짜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바뀔꺼 같은데 왜 이런 모습인지 이해가 안갔다. 그런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나 이곳이나 똑같았다. 피델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혁명한 나라지만 이곳도 결국 권력의 부패와 대물림이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집권했지만 여전히 못사는 쿠바. 이유는 돈줄을 이들 카스트로 집안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A는 아티스트답게 진보성향이었다. 자신은 피델 카스트로가 싫탄다. 안디와 미겔이 처음 우리에게 설명했던 쿠바인들은 피델을 우상으로 여기고 체게바라는 자국민은 아니지만 영웅이라고 얘기했던 것과는 정반대 얘기였다. 물론 A도 체게바라를 진정한 영웅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피델은 아니란다. 정부는 정보를 통제하고 국민들이 현실에 눈을 뜨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했다.
대학을 포함한 모든 교육과 의료가 무료지만 의사들과 선생들이 받는 한달 임금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생들은 촌지를 받고 의사들도 뒷돈을 찔러주는 환자를 먼저 챙긴단다. 의사들의 평균 한달임금은 40쿡 우리나라 돈으로 약 5만원! 60년 넘게 일한 A의 아버지도 은퇴후 받은 연금이 한달에 10쿡도 안된단다. 이런 현실에 못 견뎌 의사들은 작은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하고 있단다. 라울이 관광객을 유치하며 미국과 수교를 맺고 변화를 모색하지만 자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변하지 않을 꺼란다. 여전히 못사는 국민들은 못살고 배부른 자만 배부른 나라가 될꺼란다.
쿠바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젊은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하고 자신도 군대를 다녀왔지만 군대에서 단 한발의 총알도 쏘지 않았단다. 가서 한일은 잔디깍고 청소하고 나라에서 필요한 일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한마디로 노동력 착취란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음식과 집을 제공하지만 제공된 음식은 형편없고 집또한 매우 작고 허물어져가는 집을 준단다. 대신 이렇게 정부에서 무상 제공을 받으면 하루 10시간의 노동을 해야한단다. 아바나에 늙은 부랑자들이 많은 이유를 알았다. 실타래가 풀리는 순간이다.
뭔가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얘기하는 동안 내내 소름이 돋았다. 헬조선과 별반 다르지 않는 쿠바의 실정. 슬프다. 20쿡을 내고 그림을 사왔지만 이 그림의 가치는 20쿡 그 이상이었다. 여튼 씁쓸한 아바나의 마지막밤은 술이 필요하다. 오늘 두번째 살사 클래스가 있다고 했지만 살사보다 오늘밤은 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