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Day15, 말레꼰 그리고 데스노트

2015년 11월 24일

오늘은 정말 잊을수 없는 날이다. 꼼꼼히 기록해둘테다!! 오전에는 도로 중앙에 길따라 길게 늘어진 공원이 있는데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는지 여기도 프라도 공원이다. 오늘은 이 길을 따라 쭉 걸어볼 생각이다. 이길을 따라 쭉 걸으면 방파제가 나온다. 방파제는 스페인어로 말레꼰이라고 부른다. 방파제 위를 걷다보면 파도가 방파제에 부딛쳐 부서지는 모습이 빛과 어울려져 장관을 이룬다.

무작정 걷기

여튼 이 말레꼰을 한참 걷다보니 이제 슬슬 지쳐온다. 말레꼰 주변에서 물을 하나 사서 옆지기와 다음 일정을 논의했다. “나는 오늘 왠지 아바나 대학에 가보고 싶다잉~” “그래 가보자” 그렇게 시작된 고행의 길. 끝없이 어어진 아바나의 구심지는 여전히 다른게 하나도 없다. 매연에 먼지에 시끄러운 차소리 더러운 길,.. 처음엔 이것도 좋다 싶었는데 체력이 떨어지니까 이젠 점점 싫어진다. 드디어 대학에 도착했다. 오면서 내내 김일성 제1대학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왔는데 왠지 제 2대학처럼 캠퍼스가 그렇게 커보이진 않았다. 그늘을 찾아 일단 자리에 앉았다. 왠지 그림이 그리고 싶다. 스케치북을 꺼내 마의 15분을 지나 대략 30분간 스케치를 하다가 문득 내가 너무 어려운 집을 그리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살이며 장식용 무늬며 하나도 쉬운게 없다. 더구나 내가 들고 있는 0.2미리 펜으로로는 도저히 세밀하게 표현을 못하겠다. 역시 못난 목수가 연장탓한다고.. 이제 그만! 반만 그리고 나중에 그리겠다며 사진을 찍고 대학 구경이나 하자며 계단을 오른다. 벤치가 보인다. 잠시 쉬자!

안디, 미겔 그리고 호르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때 가능하면 편견없이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또한 여행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쿠바를 여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이틀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너무 순진했음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줬다.

벤치에 잠시 쉬며 멍때리기도 전에 두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철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이들은 안디와 미겔, 친근하게 생긴 녀석들이 먼저 말을 걸어와주니 괜히 기분이 좋다. 그리고 한국에서 왔다니까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이 학교 어학당에서 만나 한국 친구가 있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가 보였다. 한국 여자가 맞긴 맞아보였다. 사진 한장에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풀렸다. 이어서 이 학교에 대한 설명을 줄줄이 알아서 해준다. 신이 난 나는 왠지 모르게 피곤함도 싹 사라졌다. 와이프에게 이런게 리얼이라며 내가 바라던 여행이 이런거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디와 미겔은 캠퍼스 곳곳을 영어로 소개해주며 사진도 같이 찍어줬다. 왠지 와이프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나보다 더 많이 이것저것 물어보는거 같다. 여튼 그렇게 한 20여분 학교와 학교 주변 설명을 들었다.

쿠바 학생들은 대학이 무료고, 무료인 대신에 주마다 이틀동안 몇시간씩 작업장에서 일을 좀 해야 한단다. 안디는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럼 공장에서 주말마다 청소를 하는데 전문가가 아니라 럼을 제조하거나 하진 않고 보조적인 청소같은 일을 한다고 한다. 럼 공장에 온김에 궁금할걸 물어봤다. “여기 왔더니 하바나 클럽이 많턴데 저게 하바나 클럽이야?” 노노 하바나 클럽은 하급이란다. 럼은 레전다리오 7년산이 최고급이며 나중에 꼭 레전다리오를 마셔보라 한다. 안디와 미겔은 우리를 끌고 또 여기저기 설명하느라 바쁘다. 이자식들 너무 친절하다. 쿠바사람들 친절하다고 하는데 이런걸보고 친절하다고 하는건가 싶다.

쿠바의 1인자인 피델 까스트로가 하바나 대학에서 공부할때 묵었던 집이라며 어느 가게로 안내한다. 지금은 바인듯 싶다. 문 앞에 들어서자 오크통 몇개가 보인다. 목도 마르고 왠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셔볼래? 물어본다. 그래 맛 좀 보자! 하며 자리에 앉았더니 알아서 넉잔을 시킨다. 이때부터 옆지기는 이상함을 감지했다고 한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마신것은 네그롱이라고 하는데 하얀럼과 짙은색 럼을 타서 만든 모히또 같은 음료다. 맛은 싱거웠다.

자리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니 쿠바 기념품으로 뭘 사갈꺼냐 물어본다. 아마도 럼과 커피 그리고 시가를 사가지 않을까? 싶다라고 얘기했는데 이녀석이 덥썩 낚아 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낚인듯 싶다. 자기는 학생이라 학교 샵에서 뭐든 반값에 살수있단다. 그러면서 자기가 사다 주겠다며 자리를 비운다. 우리가 말릴 새도 없었다. 솔직히 난 그 순간까지도 지금 돈이 없긴 한데 정말 싸게 살수있다면 좋겠다싶었다. 안디가 돌아왔다. 하얀봉지엔 레젼다리오 7년산 럼 2병과 25개비 쿠바 시가 그리고 커피 두봉지가 담겨 있었다. 고맙다고 덥썩 받았는데,.. 가격이 궁금해진다. 그래 얼마야? 150달러! 잉 뭐라고? 내가 못 알아들은척하니까 은근슬쩍 120달러에 낮춘다. 이제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내가 당한거구나.

와이프는 얼굴색이 변했다. 화가 난듯하다. 내가 살수없다고 우리는 하루에 25쿡만 들고 다닌다고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려니까 와이프가 더 화가 난 얼굴이다. 뭘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하냐며 딱 잘라 돈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방금 마신 네그롱을 계산하려고 계산서를 보니 헐퀴! 오늘 생활비를 모두 날렸다. 택시타고 집에가려했건만 걸어가야한다. 내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은 탓이다. 아니 쿠바노를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친절하다고 하더니만 개뿔 다 사기꾼들이다.

안디, 미겔, 호르헤 이 생퀴들,.. 다 복수할테닷! 데스노트 명단은 이제 3명이 됐다. 그나저나 이 이름도 다 가짜는 아니겠찌? 아우 빡쳐! 생각하면 할수록 바보같다. 진짜 영수증도 없고 팩키지라고 던져주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보 사기꾼인데 내가 그걸 당하다니. 난 또 거기에 뭐하러 이녀석들 마신것 까지 계산했냐? 헐.. 젠장.. 우리가 마신것 만 계산할 껄.. ㅎㅎ 헤어질때마저도 친근한 인사없이 헤어졌다. 이제서야 분명해졌다. 안디 미겔,.. 이녀석 모두 호르켕이다!

집에 돌아와 정보북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여기 사람들 믿지 마세요. 특히 유창한 영어를 쓰며 다가오는 사람들은 다 사기꾼입니다. 레스토랑 소개나 시가를 파는 애들이에요.” 젠장! 당했다.

안디, 미겔, 호르껭 잊지 않겠다!

불꽃남자

UI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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